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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와 그리스도교: 그리스도교는 어떻게 로마를 정복했는가? is unavailable, but you can change that!

그리스도교와 로마의 갈등과 대립 그리고 협력이 로마 역사, 나아가 인류 역사에 끼친 영향을 탐구한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해 진행되는 ‘홍성강좌’의 첫 번째 단행본. 홍성사에서 3년 프로젝트로 기획된 홍성강좌의 첫 번째 강좌였던 <로마와 그리스도교>가 드디어 ‘His+STORY 그리스도교의 역사’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한 지 500년이 되는 해를 기념하는 이 시리즈는 교회사와 세속사를 적극적으로 통합해 그리스도교 역사를 전체사로 다루는 것을 목표로 삼고 진행되고 있다. 또한 이 시리즈는 “역사에서 개혁의 길을 찾다!”를 표어로 삼고, 오늘날 한국 교회가 어디에서 길을 잃었는지 역사의 경로를 되짚어 보며 차분하게 묻고 찾는 모색의 과정이기도 하다.

자들은 태형이나 무거운 형벌로 다스렸다. 이방신에 대한 제사는 그리스도교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어서 탄압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로마는 제사를 거부하는 교회를 파괴하고 집회를 금지하고 사제들을 체포하고 교회 집기들을 소각하며 핍박했다. 또한 그리스도교인임이 드러나면 관직을 박탈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연호(Anno Diocletiani) 284년에 등극한 디오클레티아누스는 303년에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 칙령을 내려 그리스도교를 파괴하려 했다. 이를 기억하기 위해 이후 교회에서는 디오클레티아누스 연호를 사용했다. 로마인들은 콘술 임기가 1년이기 때문에 두 명의 콘술 중 한 콘술의 이름으로 그해를 표시했다. 즉 ‘○○○이 콘술이던 해’라는 식으로 그해를 표기했다. 그러다가 제정 시대에는 황제의 제위 연도로 표기했다. 신약성경에도 “디베료(티베리우스) 황제가 통치한 지 열다섯 해” (눅 3:1)라는 표현이 나온다. 그런데 디오클레티아누스 연호는 그의 치세가 끝난 뒤에도 계속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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